
01.
시간대 중에 하나만 꼽자면, 난 새벽 시간대를 정말 좋아한다. 고요하고, 잔잔하고 노래를 들어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왠지 새벽이라는 그 시간적인 점 하나로 뭔가 좀 더 naked 해지는 느낌이랄까. 나의 감정이나 타인의 감정에 살뜰해지고, 쉽게 감성적이어지니까. 같은 행동을 해도 새벽녘에 하는 행동들이 더 의미있게 느껴지고 상대적으로 나도 이 시간을 제일 그야말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뭐, 이건 내가 중학생 꼬꼼아일 때부터 쭉 느껴오던 생각이었으니, 꽤 오래 됐네. 이래서 야행성을 못 끊어효. 물론 광합성 하러 밖에 마실 나가는 것도 좋지만 하나만 택하라면 역시 이 쪽?
02.
오늘 시험이 끝났다. 마지막 시험 하나를 치르면서, 문득. 대학 와서도 시험 참 여러 번 쳤구나, 했다. 뭣도 모르고 시험이라길래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하며 첫 시험을 치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 도서관 들어갈 때 자리 체크한다고 학생증을 스캐닝하는데 09학번들이 보이면 참, 달리 보인다. 뭐, 달리 보인다고 해서 별 다른 것 없고 그저 부러운 거지 뭐. 내년이면 10학번(..) 무섭다 무서워. T▽T 아, 정말 나이 먹는 거 무서워 죽겠다. 09학번들은 이번 겨울방학 때 뭐하면서 보낼까. 내 1학년 겨울방학은, 참 또 그냥 그냥 보냈네 싶지만. 사실 그런 잉_여 생활이 허용되고,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같은) 자기도 '아직은 좀 괜찮잖아' 하며 스스로를 걍 좀 놓아둘 수 있는 거, 잉여로 지내도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그래도 좀 견디기 괜찮은 정도의 나이. 그냥 난 그게 부러운 걸수도.(..) 20살 이후로는 찬 바람 불면 그냥 두렵다. 나도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어리다 어려' 싶을 나이겠지만 그 어줍잖은 나이에도 책임이 요구되니까. 그걸 지켜내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니까. 나는 마치 스무 살 안 보냈던 것처럼 그 나이대 애들을 부러워 하고 있다. 내가 스무 살 때, 그냥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낼 때 걔네들은 고등학교에서 나름대로 힘들게 생활했을텐데. 왜 꼭 지나고 나면 이 모든 일들이 내게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03.
시험도 끝나고 뭔가 질러주고 싶은데. 우선 내일쯤? 다이어리 보고, 친구 생일 선물 골라야지. 선물용이라도 뭔가 예쁘고 귀여운 걸 구경하고 고르는 건 어느 정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카페 가서 와플 먹고 커피 마셔야지. 마딛는 저녁도 먹고. 구스 다운 하나 사 입고픈데. 뮤지컬 티켓비 내고 나니깐 잔고가 확 줄었어. 게다가 더 비극적인 건 아직 15일도 안 됐잖아. 1월 돼야 용돈 받는데, 이거 뭐. 이미 소비의 마지노선은 무너질 지경(...) 그나저나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냉장고에 (분명) 부패된 채로 머물러 있을 음식들을 싸그리 비워내야 할 판. 휴, 이런 거 처리할 때가 제일 곤혹스럽다. 물론 나 아님 이런 거 누가 치우겠냐만. 역시 미루게 돼. 지금까지 미루다니. 택배 박스도 비워야 하는데 이건 어쩌지.
04.
내일이 마지막 과외다. 원래 같았음 화.목 해서 이미 목요일에 쫑냈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토요일로 옮겼다. 마침 놀토라길래 오전대로 시간을 잡고(..) 3월부터 했으니 한 10개월 했다. 한 학년만 어렸어도 계속 했을 과외인데 내가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신분이 된 터라, 나중에 과외 하나도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렸다. 과외하는 애도 무난하니 괜찮았고, 부모님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걔네 집에 가서 과외를 하는데 마치면 9시 반 정도다. 거기서 우리 집까지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서 버스 타면 한 10분 정도 걸리는데 버스가 좀 잘 안 온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도 살짝 걱정했는데 이게 왠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번 과외 마치면 나 집까지 태워주셨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버스비 천 원 아끼고 이런 거랑 관련없이 마음 써주시는 게 고마워서. 그리고 추석 때에도 내가 자취하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 앞날인가 뒷날인가, 그 집 가족이랑 같이 회 정식 먹는데 초대도 해주시고. 그만 두려고 하니 한 달 30만원의 고정 수입이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마음이 쓰인다. 딱히 내가 살갑게 챙겨 주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보아서 그런지 뭔가 아쉽고 그렇다.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라는 거, 어떤 경우라도 쉽게 무시를 못 해. 운이 좋았던 듯 싶다.
요새 지붕킥 보면서 황정음 정준혁학생 에피볼 때마다 (지금처럼 묘한 러브라인 뜨기 전; 정말 과외선생님 - 학생일 때) 황정음 영어 가르치는 거랑 답 보면서 가르치는 거 보고 되게 웃었는데. 솔직히 나도 단어같은 거 따로 안 보고 갔거나, 너무 국지적인 부분 나오면 음, 사전에서 찾아보자! 며(..)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적이 종종 있는데 지붕킥 보고 나서 부터는 정말 민망ㅋㅋㅋ 물론 난 그렇게 과외하면서 먹을 거 완전 물고 ㅋㅋㅋ 가르친 적은 없는 편이라고. anyway, 나는 예쁜 황정음이 아니고, 멋있는 준혁이도 없구나(...)
05.
루시드폴 신보 듣고 있다. 역시 좋다. 요새 딱히 꽂히는 노래가 없어서 부유하던 차였는데 계속 리플레이 중. 새벽에 컴퓨터 하면서 뭔가 쓰면서, 좋아하는 노래 듣기! 참 소소한 일인데, 너무 좋다.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여유를 부릴 횟수를 줄여 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아쉽게 느껴지는 거겠지. 1월부터 개강하는 노량진 학원 등록했다. 1-2월 기본반 들을 예정. 아직 교육학은 등록 전이지만; 사시나 행시는 아니지만, 여튼 나도 고시생인거다. 이제 진짜 빼도박도 못할 신분이니 조용히 짜져서 공부해야지. 예전같지 않은 합격률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가 와도 계속 그런 말들 뿐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무조건 한 번에 붙어야 한다, 다 끊어라. (무엇이든.) 휴. 뭐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고 엄마도 걱정되서 하는 말인 거 아는데 들을 때마다 불쑥 치솟는 감정은 어쩔 수 없구나. 모르는 거 아니겠지만 제일 난감하고 앞으로가 걱정되는 건 다름 아닌 나라구. 이번 방학 참 중요해서, 학원 독서실을 아주 종횡무진 해야지 싶다. 후회를 최소화하고 싶으니까.(..) 직강 들을까 인강 들을까 하다가 자세도 조율하고, 정보 면에서도 그렇고 해서 직강으로 결정했는데 그 이상, 선택에 후회없이 해야겠지. 인강은 학기 중에도 들을 거니까, 뭐.
메신저에서 얘기하다가, 친구 하나는 내년에 영국으로 1년 정도 유학갈 것이라는 말을 하던데, 휴. 부러우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이 들끓었다. 난 학교 특성상 딱히 유학을 갈 엄청난 필요성은 못 느꼈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유학이라니.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특히 요즘 같은 때에 우리 집에서 나 유학 보내달라고 했으면 선뜻 보내줄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때도 그런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물론 요새는 어학연수나 유학이나 그야말로 아무나 가지만. 그래도 기회라는 게 아무에게나 그렇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20살 넘기고 나서는 부모님께 돈 받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하다. (이러고도 꼬박꼬박 받아왔지만;) 부모님도 노후 대비를 해야 하는 거고, 딱히 우리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그러니까. 정말 그 받은 것을 고스란히 다 돌려드릴 수야 없겠지만 일정 부분 갚아가며 살아야 할텐데 그 부담을 계속 늘리기가 싫은거지. 그래서 나도 어서 취직해서 내 몫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든다는 거, 바로 패스 못하면 재수해야 되는데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싫은 거지만(..) 뭐, 어떤 선택을 하던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고, 내가 좀 뛰어난 '합리화'라는 무기를 발휘해 그 빛과 어둠을 조절해 낼 수야 있겠지만 결국 생각이 닿는 것은 어찌됐든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진리라는 거?
고3 때, 혹시 실수라도 하면 재수다-_- 싶어 이런 불길한 생각은 어서 집어 치우자며, 그닥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도 아니었던 나를 억지로 긍정적인 마음을 먹게 했던 수능의 장벽. 이것도 정말 예전이구나, 당분간은 이런 장벽에서 해방! 이라며 대학생 됐었는데 어느덧 내 앞에 그 장벽이 다시 서 있어. 올해 12월 31일, 보신각 종 타종할 때는 필히 내년 기원을 할 조임.(...) 에라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우선 공부를 본격 시작하는 게 먼저겠지. 공부 시작 전부터 동요하면 쓰나.
06.
시험 치는 내내 벗겨진 네일이 신경 쓰였다. 손톱에 빈 틈 없이 깨끗이 발렸을 땐 그렇게 좋더니만, 조금이라도 벗겨지면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다. 내일은 화장도 신경 써서! 시험 기간 내내 우중충한 얼굴로, 우중충한 스타일로(...) 그야말로 '나 시험기간' 이라는 듯 신경 별로 안 쓰고 다녔더니만 그것 자체도 싫었다. 좀 생기있고 발랄하고픈데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화장하고, 옷도 좀 신경써서 골라 입고 뭐,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도 뭔가 생기를 준다니까. 네일 바르고 자야지.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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